글
삼국지 - 제갈량
오늘은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에 대하여 독후감을 써 볼것이다.
영화 '적벽대전'의 제갈량
part 1 : 유비의 삼고초려와 제갈량
제갈량은 유비의 포부와 인간성을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시험을 보기위해 몇 번이나 자리를 피해서 애를 먹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유비는 3번이나 제갈량의 초려를 찾아서 끝내 힘들게 제갈량이라는 삼국시대의 최고의 책략가를 얻었다고 한다
그럼 제갈량의 처음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제갈량은 키가 8자로(약2미터 40센티미터)일반 사람들보다 훌쩍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갈량은 늘 윤건을 썼으며 학창의를 걸쳤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라기 보다 신선같다고 한다.
part 2 : 와룡선생에서 승상까지
제갈량은 일찍이 수경선생 사마휘로부터 서서, 석강원, 최주평, 맹공위 등과 함께 학문을 읽혀나갔다고 한다 그러므로 병법과 천문등도 생각하여 최고의 책략가가 됐다.
제갈량의 초려는 와룡강이라는 강 옆에 있어서 스스로 와룡선생 혹은 복룡선생이라고 호를 붙였다고 한다. 공명은 유비에게 온 후로 유비가 황제가 된 뒤 군사에서 승상이라는 높은 자리까지 올랐다. 이떄 군사는 직접 싸우는 군인이 아니랴 군인 훈련, 식량운반, 병법을 알려주는 등 일종의 두뇌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제갈량 말고 위나라의 사마의, 오나라의 육의 등 자신이 모시는 영웅을 보살피기 위해 여러가지 지식을 총동원 하지만 그 누구도 제갈량의 상대가 못 돼었다고한다.
그리고 제갈량이 섬기는 유비가 죽으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승상, 태자를 잘 부탁하오. 허나 그 아이가 무능하여 도무지 뜻을 펼칠 수 없다면 승상이 스스로 황제가 되어도 좋소."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유비는 제갈량을 극진히 믿었으며 언제나 아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장원에서 제갈량이 세상을 떠난 후로 위,촉,오 세나라는 사마의에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의 대군을 막지못하고 모두 멸망하여 진나라가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룬다.